[의료칼럼] 헬리코박터 제균치료가 중요한 이유
등록일 : 2026-10-16
건강검진 결과에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양성’이라는 소견을 받으면 치료 여부를 두고 고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별한 증상이 없고 비교적 흔한 균으로 알려져 있다 보니 “꼭 치료해야 할까”, “약을 먹으면 오히려 속이 더 불편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치료를 미루기도 한다. 하지만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단순히 위염을 일으키는 세균으로만 보기 어렵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군 발암물질로, 위암 발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 점막에 장기간 머물며 만성 염증을 일으키고, 시간이 지나면서 위축성 위염이나 장상피화생 등 위 점막의 변화를 유발해 위암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이 같은 변화가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 없이 진행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헬리코박터균을 제거하는 제균치료는 위암 위험을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원문에 인용된 2016년 Gastroenterology(소화기내과) 메타분석에 따르면, 헬리코박터 제균치료를 받은 사람은 치료하지 않은 사람보다 위암 발생 위험이 약 4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조기 위암으로 내시경 치료를 받은 환자 중에서는 제균치료 후 새로운 위암 발생 위험이 절반 이상 감소한 것으로 보고됐다. 치료 시점도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위 점막이 비교적 건강한 시기에 제균치료를 시행할수록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유리하다. 반면 장상피화생(腸上皮化生)과 같은 전암성 변화가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균을 제거하더라도 위암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발견 시기가 늦었다고 해서 치료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위 점막에 변화가 생긴 경우에도 제균치료는 향후 위암 위험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특히 위암 치료를 받은 환자에게서는 새로운 위암 발생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헬리코박터 제균치료는 일반적으로 위산 분비를 억제하는 약과 2~3가지 항생제를 함께 복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치료 기간은 보통 1~2주 정도다. 치료 기간 자체는 길지 않지만, 제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해진 용법에 따라 약을 빠뜨리지 않고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는 항생제 내성으로 기존 치료가 실패하는 경우도 있어 환자의 과거 약물 복용력이나 지역 내 항생제 내성 양상 등을 고려한 치료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치료 과정에서 설사나 복부 불편감, 미각 변화 등의 증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대부분은 치료가 끝난 뒤 자연스럽게 호전되지만, 불편하다는 이유로 약 복용을 임의로 중단하면 제균 실패뿐 아니라 내성균 발생 위험도 커질 수 있다.
치료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과정이 마무리되는 것도 아니다. 제균치료 후에는 요소호기(UBT, Urea Breath Test) 검사 등을 통해 헬리코박터균이 실제로 제거됐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제균에 성공했더라도 이후의 위 건강 관리는 계속돼야 한다. 이미 위축성 위염이나 장상피화생 등 위 점막 변화가 진행된 경우에는 정기적인 위내시경 검사를 통해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흡연과 음주, 짠 음식 위주의 식습관, 비만 등도 위암 위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생활습관 관리 역시 병행할 필요가 있다. 제균치료를 위 건강 관리의 ‘완결’이 아니라 ‘출발점’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건강검진에서 헬리코박터 양성 소견이 확인됐다면 증상이 없다는 이유로 가볍게 넘기기보다 현재 위 상태를 확인하고 전문의와 상담해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의료재단 IFC종합검진센터 정연희 진료부장은 “헬리코박터 제균치료는 단순히 균을 제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위암 발생 위험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예방 방법 중 하나”라며 “건강검진에서 양성 소견이 확인됐다면 증상이 없더라도 현재 위 상태를 정확히 평가하고 적절한 치료 여부를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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